<환경동화>
망가진 우산 고쳐드려요

▲ 최주섭 / 아동문학가
▲ 최주섭 / 아동문학가

진수가 책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섰다.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파트 승강기를 다시 타고 8층을 눌렀다. 현관문 비밀번호가 틀렸는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진수는 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엄마! 진수예요. 비가 와요.”
“미안해. 내가 우산을 챙겨줘야 했는데.”
엄마는 신발장에서 우산 한 개를 골라 우산을 폈다. 우산살 한 개가 부러져있다.
“고장 난 우산만 있네.”
진수는 툴툴대며 우산을 받아 들었다.

엄마는 구청 평생교육원에 갈 채비를 서둘렀다. 오전 내내 부슬비가 내렸다. 고장 난 우산 한 개는 펴서 쓰고, 남은 것은 면주머니에 넣고 지하철역을 향했다. 지하철역 옆 비좁은 구석에는 망가진 우산을 고쳐주는 빵모자 아저씨의 일터가 있다.
엄마는 가져온 우산을 모두 내놓았다.
“죄송해요. 우산을 바로 반환했어야 했는데 고장 난 채로 가져왔어요.”
아저씨가 망가진 우산들을 받아들며 싱겁게 웃었다.
“괜찮아요. 우산 고치는 것이 제가 하는 일인데요.”
아저씨는 우산 세 개를 펴보며 고장 난 곳을 살폈다.
“녹이 슨 우산살은 기름을 발라줘야 하구요. 부러진 우산살 두 개는 새것으로 교체해야겠어요. 박음질 한 곳이 터진 곳도 있네요.”
“수선 요금이 모두 얼마예요?”
“3천원만 주세요.”
“매번 우산을 고쳐주셔서 감사해요. 빵모자를 선물로 드릴게요.”
“어이쿠! 선물까지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우산은 모레 찾으러 오셔야 합니다. 내일엔 자원봉사를 가거든요.”

아저씨는 월, 수, 금 3일에만 지하철역 일터를 열었다. 다른 날은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와 동네 도서관 등을 순회하며, 망가진 우산들을 고쳐주거나 받아왔다.
오후가 되어도 비가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비바람이 불었다. 진수가 쓰고 가던 우산이 비바람에 뒤집어졌다. 우산살이 여러 개가 부서진 것을 보고 당황했다. 빵모자 아저씨가 진수를 불렀다.
“학생! 이리와. 고친 우산을 쓰고 가. 흙비 맞으면 머리털이 빠진대.”

진수가 미소를 지으며 아저씨에게 부서진 우산을 내놓았다.

“아저씨, 감사해요. 내일 돌려 드릴 게요.”
“내일은 문을 닫으니, 모래 우산을 찾아가거라.”
아저씨가 일을 마치고 수선 도구들을 가방에 넣었다. 고친 우산 몇 개는 일터 옆에 있는 자주색 플라스틱 통에 넣어두었다. 통 옆에는 무언가 쓰여 있었다.
‘필요한 분은 가지고 가세요. 우산은 돌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다음날 내리던 비가 그쳤다. 오후가 되니 해가 쨍하니 비쳤다. 아저씨가 길가에 버려진 우산을 집어 들었다.
“고치면 다시 쓸 수 있는 우산을 버리고 갔네. 옛날에는 망가진 우산도 여러 번 고쳐 사용했었는데...”
아저씨는 초등학교 정문 옆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손잡이 없는 우산 두 개를 펼쳐 나무 받침대에 꽂았다. 훌륭한 햇빛 가리개가 되었다.
“오늘은 일거리가 좀 있을 까?”
우산살이 없는 천을 땅에 까니 일터가 되었다. 빛바랜 작업 가방을 열어 펜치 등 몇 가지 도구도 올려놓았다. 아저씨는 작은 의자에 앉아마자 주위를 둘러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기분 좋은 날씨군.”

아저씨는 길가에서 주운 우산을 고치기 시작했다. 진수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우산을 들고 달려 왔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엊그제 빌려주신 우산 가져왔어요.”
아저씨가 하던 일을 멈추고 진수를 쳐다보았다.
“비도 안 오는데 우산 가지고 오느라 수고했구나.”
“잠깐 의자에 앉아도 되죠?”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산도 다 고쳐놓았다.”

진수가 작은 의자에 앉으며 책가방에서 우유 한 봉지를 꺼냈다.
“아저씨 우유 드세요.”
“웬 우유? 우유는 네가 먹어야지.”
“아니에요. 우유 드시고 쉬면서 일하세요.”
아저씨가 우유를 맛있게 마셨다. 진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저씨, 궁금한 거가 있어요.”
“궁금한 거?”
“아저씨는 젊었을 때 무얼 하셨어요?”
아저씨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헛! 젊었을 때? 고급 우산 만드는 공장의 생산부장으로 일했지.”
진수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군요.”

아저씨는 우산 공장 일을 회상했다.
“중국산 우산이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우산 공장들은 하나씩 문을 닫았지. 끝내 백화점에만 납품해온 우리 공장도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겼어. 나이도 들어 베트남에 가는 것은 포기했지, 지금은 망가진 우산을 고치는 일을 하고 있지.”
강한 바람이 불어 아저씨의 색 바랜 빵모자가 벗겨졌다. 아저씨가 겸연쩍어 했다.
“어이쿠! 내가 어릴 때 우산 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지. 산성비를 많이 맞은 바람에 머리털이 이렇게 빠졌어. 허허.”

진수가 웃음을 참느라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요즘엔 산성비보다 황사나 미세먼지가 섞인 비가 많이 내린데요.”
아저씨가 빵모자를 다시 쓰며 빙긋이 웃었다.
“나도 진수에게 궁금한 것이 있는데.”
“무엇이 궁금하세요?”
아저씨가 진수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어떤 아주머니가 우산을 고치러 가끔 오시거든.”
진수가 눈을 더욱 크게 떴다.
“그분이 누군데요?”
“나는 한번 고쳐준 우산은 모두 기억하거든.”
“우리 엄마 같아요. 우산이 망가지면 매번 고쳐 쓰시거든요.”
아저씨가 씨-익 웃었다.
“그분이 나에게 빵모자를 선물로 주셨거든.”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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