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집행위원회, 기후목표 이행 패키지 ‘핏포55’ 발표

CBAM 과도기 설정…주요 쟁점별 단계적 시행방안
EU 야심찬 기후목표 이행 패키지 발표

산업연구원(KIET)이 최근 ‘EU 탄소국경조정제도 입법안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2021년 7월 14일 EU 집행위원회는 EU의 기후목표 이행 패키지인 ‘핏포55(Fit for 55)’를 발표했다. E

U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을 1990년 대비 55% 이상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법률로 설정(2021년 6월 ‘기후법’ 유럽 의회 통과)하고, 기후목표를 달성하는 한편 경제·사회·산업 전반에 걸쳐 요구되는 전환적인 변화를 선도하기 위하여 ‘ 핏포55’ 패키지를 발표했다.

‘핏포55’는 지금까지 EU 집행위가 기후와 에너지에 관해 제안한 계획 중 가장 포괄적인 패키지이고, 공정하고(fair) 경쟁력 있는(competitive) 녹색(green) 전환의 추구를 목표로 상호 연결된 제안으로 구성됐다.

기후, 에너지 및 연료, 운송, 건물, 토지 이용 및 산림 등 다양한 정책과 경제 분야에 걸쳐서 규제정책 강화와 시장 메커니즘을 적절히 조화시켰으며, 가격 정책, 목표 강화, 규칙, 지원 조치 등의 형태로 기존의 8개 제도·법을 강화하고 신규 5개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그리고 가격정책의 일환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이하 CBAM)의 입법안을 공개했다.

글로벌 기후변화와 무역질서 변혁 예고

EU는 유럽 그린딜(2019년 12월)에 포함되어 글로벌 기후변화와 무역 질서의 변혁을 예고해 온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대상, 일정, 방식 등 구체적인 입법안을 ‘핏포55’를 통해 공개했다.

‘CBAM’은 EU 국가의 강력한 기후 정책과 규제로 인한 자국의 산업경쟁력 약화 대응, 탄소 누출(carbon leakage) 감소, 글로벌 기후 합의사항에 대한 타국의 참여 유도 등을 위해 EU집행위원회가 제안했다.

당초 ‘CBAM’은 초기 영향평가, 각계 의견수렴 등을 거쳐 2023년부터 본격 시행이 예고됐으나, 이번 ‘핏포55’의 발표를 통해 변경된 시행 일정과 탄소국경조정 방식 등이 공개됐다.

물론 글로벌 기후위기의 효과적 대응 및 공정한 무역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해 CBAM이 필요하다는 EU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WTO 합치성 여부와 설계방식에 따라 각국의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시행 합의에 어려움이 예상되곤 있다.

또한 배출감축 비용이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있어 다른 형태의 보호무역 수단으로 기능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그리고 CBAM 대상 제품과 분야 결정, 제도의 복잡성 수준, 제품 탄소함유량 평가 방식, 기후정책의 동등성 계산 방법 등이 CBAM 설계 관련 주요 쟁점이다.

CBAM, 2025년까지 과도기간 설정

‘핏포55’의 일부로 제안된 CBAM 입법안은 총 11장 36조와 5개의 부속서로 구성돼 있고 목적, 범위, 정의 등을 포괄하는 총칙부터 수입 신고, CBAM 관할당국, CBAM 인증서, 집행 등에 관한 규정을 포함한다.

또 CBAM은 2023년 1월1일부터 발효되나 2025년까지 과도기간(transition period)이 적용되어 동 기간 중 수입자에 대해 CBAM 인증서를 구입할 필요 없이 제품에 내재된 실제 직간접 배출량 및 해외에서 지불된 탄소가격 등에 대한 정보의 분기별 보고만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번 제안은 그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던 CBAM의 방식 및 적용 범위, 탄소배출량 측정 방법, 예외 대상 등에 관한 규정도 제시했다. 시행 방식은 기존 검토안인 ▷탄소 국경세 ▷탄소세(소비세) ▷EU ETS 확장 ▷EU ETS에 기반한 수입자에 대한 별도의 ETS 운영 중으로 결정됐으며 이는 WTO 규범과의 합치성을 고려한 것으로 판단된다.

수입자는 탄소집약도가 높은 특정 상품을 수입하기 위해 EU ETS의 탄소가격에 따라 CBAM 인증서를 구입해야 하며, EU 역외국의 생산자가 상품 생산에 사용된 탄소에 대한 가격 지불을 입증할 수 있으면 해당 비용은 공제 가능하다.

CBAM 인증서의 가격은 각 주의 마지막 영업일에 공시되는 EU ETS의 경매 마감 가격 평균치로 산정한다. 적용 산업은 시멘트, 철강, 알루미늄, 비료, 전기 등 탄소집약도가 가장 높은 산업을 우선적 대상으로 하나 추후 확대될 여지가 존재한다.

배출량 산정의 경우 2021년 6월의 초안과는 달리 상품에 내재된 배출량 계산 시 직접 배출량만을 고려하도록 설계된 점이 차이를 보이며, 이에 따라 제품 생산용 전기 생산에 필요한 배출량과 같은 간접 배출량은 제외되며 해당 분야의 중간재를 사용하는 다운 스트림 제품에도 미적용 된다.

EU ETS 무상할당이 폐지되지 않은 내부 상황을 반영하여 제도의 시행 시기를 다소 조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EU 당국은 CBAM이 WTO 규범에 합치되도록 설계된 것임을 강조하지만 EU ETS에서의 무상할당이 폐지되지 않음에 따라 모든 조항이 발효될 경우 EU 역내 산업에 대한 이중보호라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EU CBAM의 WTO 합치성에 대한 우려는 EU 배출권의 무상할당에서 비롯되며 이 무상할당은 2026년 CBAM이 본격적으로 발효된 이후 2035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2025년까지 과도기 동안은 CBAM의 원활한 시행을 촉진하고 수출입자가 적응할 수 있도록 CBAM 의무를 축소한다.

현재 전 세계 배출권거래제 시행 중

2005년 EU를 시작으로 현재 전 세계에서 지역 단위부터 범국가 단위까지 다양한 수준의 배출권거래제를 시행 또는 도입을 고려 중이다. 범국가적 운영 1건, 8개 국가, 18개 지방정부, 6개 도시에서 시행 중이다.

전 세계 GDP의 54%, 전 지구 온실가스 배출의 16%가 배출권거래제 제도 하에 있으며, 배출권거래제 대상 온실가스 규모는 EU가 제도를 도입한 2005년 이후 세 배로 증가했다. 2013년부터 지역 단위에서 시범적으로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해 온 중국은 올해 7월 16일부터 국가 단위 배출권거래제를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미국과 일본도 지역 차원에서 배출권거래제를 운용 중이며, 특히 미국은 복수의 주(州)로 구성된 지역 차원의 합동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제3차 계획기간(2021~2025년)을 이행 중이다. 배출권 전량 무상할당에서 유상할당 확대, GF 할당방식에서 BM 할당방식으로 전환 등 온실가스 감축의 실효성을 위한 제도의 선진화를 추진 중이다.

GF(Grandfathering)는 기업별로 과거 온실가스 배출실적을 기준으로 배출권을 할당하는 방식이다. BM(Benchmark)은 기업의 활동량(제품 생산량) 등을 기준으로 효율성 지표를 감안하여 배출권을 할당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2019년 무상할당량은 총 5억 5470만 톤이었으며, 부문별로 산업(3억 1430만 톤), 전환(2억 1630만 톤), 폐기물(1740만 톤), 건물(410만 톤), 수송(190만 톤), 공공·기타(60만 톤) 순이다.

글로벌 공급망 핵심가치 전환 가능성 증대

EU CBAM의 도입으로 인해 국제무역질서의 변화가 가속화할 전망이다. CBAM은 자유무역체제에서 확장된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가치 전환 가능성을 증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가치가 과거의 저비용 고효율에서 유연성, 안정성, 지속가능성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CBAM은 변화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저비용 고효율 지역으로 생산 활동이 이전하던 기존 글로벌 공급망을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재편하려는 시도가 계속될 전망이다.

EU는 CBAM의 시행에 따른 역외 국가와 역내 산업계의 반발과 국제규범과의 합치성에 대한 부담으로 초안보다 유연한 내용의 입법안을 최종 발표함으로써 CBAM의 조속한 착수 의지를 반영했다.

그리고 과도기간 내 EU 수입품의 탄소배출에 관한 정보 보고 시행으로 인해 CBAM 시행 관련 실제 데이터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를 CBAM의 본격적인 시행 시 참고하여 활용함으로써 제도 운용의 효과성과 이해관계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국제무역질서 재편 과정에서 국제규범과의 충돌을 줄이고 조화롭게 시행될 수 있는 방안 모색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최혜국 대우, 내국민 대우 요건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BDR)”에 위배할 소지가 있는 부분의 개선에 관한 국제적 합의가 필요하다.

각국의 견해 차이 선명

배출권거래제(ETS)의 확대형으로 시행 예정인 EU CBAM에 대한 각국의 견해 차이는 선명하다. ‘핏포55’를 통해 발표된 EU CBAM은 ETS 자체는 아니지만 ETS의 확대된 형태다.

CBAM은 배출허용량을 규정하고 배출권을 거래하도록 하는 ‘cap and trade’ 시스템은 아니지만 ETS 가격을 반영하고 수입품에 내재된 배출량에 상응하는 인증서를 구매하도록 하는 제도를 기본 틀로 설정됐다.

EU집행위는 CBAM을 EU법 내 세금으로 제안하지 않음으로써 EU 회원국 만장일치 없이 통상적인 법적 절차를 통해 EU 의회와 이사회의 CBAM 규정(regulation) 도입 촉진을 도모하고 있다. 이와 관련, 보고서는 “국가 단위의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고 있는 우리나라 산업계가 CBAM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EU와의 협의에 적극적인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U의 범국가 차원의 배출권거래제를 제외하고는 현재 국가 단위의 배출권거래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는 올해 신규로 참여하게 된 영국, 독일, 중국을 포함하여 8개국에 한정되어 있다. 이미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감축 노력을 진행해 온 우리나라는 최대한 국내기업의 수출 피해가 없도록 객관적인 대응 논리를 마련해 EU와 적극적인 협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EU의 이번 제안은 탄소국경조정이 성공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초기 테스트가 될 것이며, 다배출 산업 중심으로 EU와의 교역이 활발한 국가들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러시아, 중국, 터키, 우크라이나 등 EU에 비료, 철강 및 알루미늄을 대규모로 수출하는 국가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미국은 해당 산업에서 대EU 수출 규모가 작아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으나, 미국에서도 최근 실질적인 기후정책이 없는 국가로부터의 수입에 대한 상계관세가 제안됨에 따라 향후 기후정책과 무역정책의 긴밀한 연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에 한국은 대EU 수출 규모가 큰 편인 철강 기초소재 및 1차 제품 분야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추적해 시의적절한 대응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배출권거래제 운용 선진화, 강점 발굴 필요

보고서는 또 해외 배출권거래제 운영사례를 참고해 국내 배출권거래제를 선진화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실제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 2차 계획 기간에 BM 적용 비중이 확대되었으나, BM 기준이 EU와비교하여 낮은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BM 계수 설정 시 주로 동일 공정 배출효율 중간 값을 적용하는 반면, EU는 상위 10%의 평균 수준을 기준으로 한다. 그리고 EU는 4기 ETS에서 무상할당 폐지에 관한 개혁을 추진하기 어려워졌지만, 2026년부터 무상할당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갈 계획이므로 국내 배출권거래제 운용 시 유상할당 비율 상향과 국제 탄소시장 연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CBAM의 도입으로 국내 수출에 영향을 미칠 잠재적인 국가의 현재 환경규제 또는 배출권거래제 현황을 파악해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와 비교하되, 국내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와 EU의 배출권거래제를 통한 감축 노력 수준의 차이를 각국의 여건을 고려해 유연하게 비교·분석하고, 그 결과를 활용하여 EU와의 협의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EU와 비교하여 더 많은 종류의 대기오염물질과 분야에 배출권거래제를 적용하고 있고, 배출권거래제 이외의 국내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점검하고 국제 비교를 통해 국내 제도의 비교우위 부분을 파악할 필요도 있다.

우리나라 탄소배출권 가격은 다소 불안정한 양상을 보이므로 배출권 수급에 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탄소가격의 불안정성을 줄임으로써 안정적인 제도 운용 방향 모색이 필요하다.

EU의 경우 배출권 가격이 시장의 수급상황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으나 우리나라는 배출권 수급의 불확실성이 높아 배출권이 과소 공급되어 가격이 급등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2020년 EU와 우리나라의 탄소배출권 평균 가격은 비슷한 수준(EU 28.3달러, 한국 27.6달러)이었다.

그러나 EU는 올해 상반기 평균 52달러라는 기록적인 탄소가격 수준을 보였으며 탄소시장 개혁 전망에 힘입어 2030년까지 지속적 상승이 예상되는 반면, 우리나라의 올해 상반기 탄소가격(평균 15달러)은 작년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공급망 단위 탄소배출 규제 대비해야

CBAM의 과도기 종료 후에는 현재의 CBAM 제안 내용보다 더 포괄적 범위의 탄소국경조정을 시행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장기적으로는 제품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에서 더 나아가 공급망 전체의 탄소배출을 고려할 것인지, 제품 생산 단계에서 직접 발생하는 배출뿐만 아니라 제품 생산에 활용되는 전기 등에서 발생하는 간접배출까지 포함할지를 집행위가 평가해 결정할 예정이다.

따라서 CBAM의 시행 시 발생할 수 있는 파급효과 또는 부작용을 글로벌 공급망 전 과정 측면에서 면밀하게 검토하고 향후 그 추이 관찰 및 대응 모색이 필요하다. 해외 기업들이 유럽에 대해서는 가장 친환경적인 수출을 하면서 다배출 생산을 유럽 이외 다른 국가로 수출하면 전 지구적인 배출량은 감소하지 않고 수출 대상 국가만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EU 기업들은 생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CBAM이 적용되는 품목을 직접 수입하지 않고 이 품목의 소재로 만든 중간재를 수입하는 방향으로 공급망을 조정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이처럼 CBAM의 시행으로 글로벌 가치사슬 중 다운 스트림으로 탄소배출이 이동하는 등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해 글로벌 공급망 전 과정 관점에서의 탄소배출 현황에 주목하고 향후 규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보고서는 “공급망 탄소배출 관리를 위해 기술혁신과 투자를 통한 중소기업 협력업체 역량 배양과 함께 공급망을 고려한 탄소배출 데이터 수집 및 구축체계 강화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조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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