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섭 / 아동문학가
최주섭 / 아동문학가

벌이 사라졌어요.

사과나무 과수원 위에 대형 드론이 나타났다. ‘소리와 함께 드론에서 하얀 물을 사과나무에 뿌리기 시작했다. 드론 기사가 열심히 설명했다.

드론이 날아다니면서 꽃가루를 떨어뜨려 꽃 속 암술에 닿도록 하는 겁니다. 사과나무 1500그루에 꽃가루를 뿌리는 데 15분이면 끝납니다.”

과수원 할아버지가 만족한 표정으로 엄지 척을 했다.

두 사람이 하루 종일 수분 작업할 일을 커피 한잔 마시는 시간에 마쳤어요.” 할아버지 가까이서 드론을 지켜보던 손녀 루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할아버지, 드론이 꽃가루를 운반하는 일을 벌처럼 잘 할까요?”

할아버지도 무덤덤하게 말했다.

벌이 잘 하겠지만, 벌이 사라지자 수분 작업할 일꾼도 구하기가 어렵단다.”

루시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마당에 심은 꽃에서 다리에 꿀물을 묻히던 벌 봉봉이와 봉주가 수군댔다. 루시가 벌들에게 다가갔다.

너희는 뭔가 재밌는 것이 있나 봐?”

벌 봉봉이가 꽃 속에 파묻었던 다리를 털었다. 그들은 비행기가 궁금했다.

비행기가 무언 가를 사과나무에 뿌리던 데요?”

루시가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드론이라는 기계야. 사과 꽃에 꽃가루를 뿌리는 거야. 벌들이 모두 떠났대.”

벌 봉주가 긴 입술을 내밀었다.

우리도 떠날 거예요.”

루시가 화들짝 눈을 크게 떴다.

어디로?”

농약을 뿌리지 않고도 농사를 짓는다는 곳으로 갈 거예요. 안녕

루시는 두 마리의 벌이 떠나는 것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런 곳이 있겠니?”

텔레비전 농촌 특집 프로에 벌이 사라졌다.”가 보도되었다.

벌이 사라지면서 벌을 키우는 사람들 뿐 아니라 과일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큰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꽃이 수정을 해야 열매를 맺는데, 벌이 없어서 일일이 붓으로 꽃가루를 암술에다 옮겨주기가 너무 힘듭니다.”

할아버지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내년부터 사과 농사도 그만 두어야겠어요.”

할머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돌렸다.

이참에 사과 농사 대신 벌을 부르는 쉬나무를 심으면 어떨까요?”

할아버지가 의의라는 듯 놀란 표정이다.

좋은 생각입니다. 옛날엔 쉬나무를 불을 밝힌다는 소등나무라고도 했어요. 쉬나무의 까만 열매를 짜서 기름으로 사용하거나 약재로도 쓰죠.”

루시가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벌이 사라진 동네에 벌을 다시 부르네요. 너무 멋있어요.”

벌들이 도착한 곳은 친환경농사를 짓는 동네였다. 이곳에선 화학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대신에 천적을 이용하고 낙엽을 썩혀 퇴비로 농사를 짓는 동네였다. 봉봉이가 어른 벌에게 루시네 동네에 갔다 온 이야기를 꺼냈다.

드론이라는 기계가 사과나무 꽃에 꽃가루를 뿌리는 장면을 봤어요.”

어른 벌이 왕 눈을 더 크게 떴다.

기계가 꽃가루를 뿌린다고?”

과수원에 벌들이 찾아오지 않자 농부들이 붓으로 꽃가루를 뿌렸대요. 요즘엔 젊은 일손을 구하기가 어렵게 되자 이젠 기계를 사용한데요.”

어리석은 인간들이구나.”

기계를 사용하면 일을 빨리 끝낼 수 있대요.”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어. 꽃은 특유의 향기와 색으로 수많은 종류의 곤충을 유인하지. 꽃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체형이나 꽃가루를 암술에 묻혀주는 방법을 아는 곤충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어.”

봉주가 고개를 끄덕였고 어른 벌의 설명이 이어졌다.

화학물질로 만든 농약도 문제지만 기후변화가 더 문제야. 예년과 달리 높은 기온으로 일찍 곤충이 겨울잠에서 깨어났는데 기온이 갑자기 낮아지면 얼어 죽게 돼. 옛날에는 봄꽃이 피는 시기가 남쪽에서 먼저 피고,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서서히 꽃이 피었지. 요즘은 기후변화로 전국이 꽃 피는 시기가 같아진 거야. 벌들이 꿀을 얻을 수 있는 기간이 좁혀진 거야. 그리고......”

또 있어요.”

농업인들이 공장에서 상품을 만들어내듯 과일이나 채소 재배를 너무 많이 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돼요.”

넓은 비닐하우스에 한 종류의 농산물만 가득 심으면, 같은 시기에 꽃이 피기 때문에 꽃가루 수분 작업도 바빠지는 거야. 꿀을 많이 따기 위해 벌을 기르지. 가축처럼 벌들을 길들인 거야. 벌들이 지치는 거지.”

루시는 할머니를 졸랐다.

할머니가 장보러 가실 때 함께 가고 싶어요. 살 게 있어요.”

아빠 엄마가 사다준 인형이 많이 있잖니?”

그거 말고요.”

루시는 시장에 가자마자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할머니가 미장원에서 파마를 하는 동안 눈 여겨 본 꽃가게를 찾았다. 주인이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봄꽃처럼 예쁜 아가씨.”

봄꽃이 알록달록 화려했다. 꽃 이름표를 보면서 진달래, 영산홍, 할미꽃, 튤립, 수선화, 히아신스, 작약, 제비꽃, 미스김 라일락 등등을 감상했다.

예쁜 꽃이 많네요. 마당에 꽃밭을 만들려고 해요. 꽃을 추천해주세요.”

어떤 꽃이 좋을까? 오래 피는 꽃이 좋겠죠?”

기왕이면 벌들이 좋아하는 꽃이면 좋겠어요. 계절 따라 봄꽃, 여름 꽃, 가을꽃을 심고 싶어요.”

벌들이 좋아하는 꽃은 왜요?”

할머니가 벌이 좋아하는 쉬나무를 심는대요. 저는 앞마당에 꽃을 많이 심고 싶어요. 나중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향으로 내려오시면 사시사철 꽃을 볼 수 있는 꽃 정원을 만들자고 할 거에요.”

할머니가 파마를 마치고 루시에게 왔다.,

네가 꽃집에 있을 줄 알았다.”

주인이 할머니를 바라보며 루시를 칭찬했다.

꼬마 아가씨의 당찬 목표에 놀랐어요. 우리 꽃집도 꽃마을 만드는 걸 응원하고 싶어요. 채송화, 봉숭아, 나팔꽃 모종을 덤으로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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