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그늘도 없이 넓게 펼쳐진 넉넉한 오름 봉우리,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푸른 벌판,
굴레 벗은 말 몇 마리 한가히 풀을 뜯는 제주 오름에
따사로운 봄 햇살 받아 피어난
핏빛 진한 탐스러운 피뿌리풀 꽃송이가
외면할 수 없는 강한 흡인력으로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피뿌리풀은 북방계 식물로 추운 지방 식물입니다.
황해도 이북, 백두산, 몽골, 중국, 북시베리아, 네팔 등에 분포하며
남한에서는 유일하게 제주의 동쪽 몇 개 오름에서만 자랍니다.
꽃말은 '슬픈 정열', 몽골에서는 흔하디흔한 잡초라고 합니다.
제주에의 유입설은 삼별초군 정벌 이후 탐라총관부가 설치되고
제주의 오름이 일본 정벌을 위한 군마를 기르고 방목하는 장소가 되면서
몽골의 말과 함께 들어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제주 동쪽 몇몇 오름에는
오름 벌판을 붉게 물들일 정도로 꽃이 많이 피었다는 데
지금은 무분별한 채취로 명맥 유지가 어려워
매우 한정된 오름 몇 군데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나마 산불감시원들이 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돌덩이로 둘레를 쌓기도 하고,
쉽게 눈에 띄지 말라고 나무나 풀잎으로 가려 놓기도 하지만
감시원의 근무 기간이 끝난 5월 중순 이후에는 감시 등
아무런 대책이 없어 보전 대책이 절실하다고 합니다.
이제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이 씨가 말랐고
남은 몇 군데에서도 보이는 족족 누군가가 몰래 캐어가
그 이듬해에 보이지 않는 것이 상례라 하니 참으로 한탄스럽습니다.
자생조건이 까다로워 그곳이 아니면 자랄 수 없기에
널리 퍼지지 못하고 한정된 그곳에서만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욕심내어 옮겨 심어봤자 정성껏 가꾼다 해도
시간이 문제일 뿐 2~3년 못 가서 결국 죽고 맙니다.
현재 가정 화단에 심겨 있는 원예종 아닌 희귀식물은
모두가 도둑 채취한 것이며 이들이 제대로 자라 번성하지 못하고
죽어 없어지고 마는 것이 바로 자생조건 때문입니다.
귀중한 식물자원을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하는
무지의 슬픈 욕심을 버리고 부질없이 채취하는 일이 없어져서
멸종위기의 식물이 더는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름: 피뿌리풀(팥꽃나무과)
학명: Stellera chamaejasme
이명: 매괴랑독, 서흥처녀꽃, 처녀풀, 처녀꽃, 피뿌리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