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원자력갈등 표현하는 채널 역할 못해

우리나라 에너지와 원자력에 대한 정치 부재가 곧 무책임의 정치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같은 지적은 김수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가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한국사회 에너지 민주주의 확대를 위한 쟁점과 과제’라는 토론회에서다.

이 토론회에서 김수진 교수는 ‘에너지 전환의 정치’라는 발제를 통해 “원자력부분에서 정책의 집행과 결정이 구분되어 있지 않아 방사성폐기물 처분 문제와 사용후핵연료 처리문제의 책임소재가 굉장히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들은 사용후핵연료가 임시저장소에서 포화되고 있어 그 긴급성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책을 지금까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대해서 국정감사의 회의록을 보면 십 수년째 의원들이 동일한 질문을 하고 동일한 답변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원자력 정치가 없다는 말은 원자력 갈등을 표현하는 채널로서 정당의 역할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방사성폐기물처분 부지문제, 신규발전소 부지 선정 문제, 송전탑 건설문제 등에서 사회적 갈등을 겪었는데 여기에서 정치의 역할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국회의원들은 이러한 갈등에 대해 국정감사에서 피감사기관에 질타를 한다. 그러나 그 원인을 정부의 대응능력부족으로 귀속시키고 이에 대한 해결책도 원자력 안전에 대한 홍보 강화와 주민보상제도 향상 등으로 귀결시킨다.

정당의 강령이나 뚜렷한 정책 부재로 지금까지 원전건설 프로젝트가 강행되는 사례가 많았다.

이는 의회가 원자력 갈등에 직접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원자력 갈등이 중앙정부와 지역주민들 간의 갈등으로 축소되어 힘의 역학관계로 중앙정부가 프로젝트를 강행할 가능성이 더 많았던 것이다.

▲ 김수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 김수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실패

국회에서 많이 제기하고 있는 사후처리충당금의 부채자산 운영도 오랫동안 문제가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못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한마디로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는데 실패했다”며 “방사성폐기물처리 문제에 대해서 지금까지 책임 있는 개입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바로 의회의 원자력정치 부재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예로 “18년 전부터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폭탄 돌리기 같은 그런 느낌이 많이 든다. 더 이상 지체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좀 정해진 시점에 용단을 내려서 빨리 부지선정 등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판단이 된다”는 2015년 산자위 국감에서의 어느 의원의 발언을 들었다.

김 교수는 사실 국회의원들도 이 문제는 너무 크다보니 누군가가 결정해주길 바라고 있으며, 사용후핵연료 포화 및 임시저장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데 방사성폐기물처분을 위한 신뢰성 있는 로드맵이 부재인 것이 바로 ‘무책임의 정치’라고 꼬집었다.

왜 정치는 원자력문제에 개입하지 않는가

원자력문제는 지역구 의원이 아닌 이상 개입해서 좋을 것이 없다. 이 문제는 장기적이고 방사성폐기물 처분문제가 지역구의 문제가 아니면 개입하는데 시간만 들고 보상도 크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원자력 갈등 해결은 ‘공공재’의 성격을 지니므로 누군가가 해결해주면 어떤 정치인이든 무임승차의 유혹을 받을 수 있다.

독일도 1979년부터 정치가 원자력문제에 대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1980년 앙케트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사회적으로 찬반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원자력 문제에 대해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에서 이문제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노력을 취하지 않으면 의회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김 교수는 “원자력정치가 딜레마 상황이지만 반드시 정치가 개입해서 책임 있게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에너지 전환의 정치 부재

원자력 정치도 부재하지만 에너지전환의 정치도 부재하다. 사실 에너지전환을 선언하기 위한 신규 원전건설 금지, 원전수명 연장 금지에 대한 입법화의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김 교수는 “입법을 시도하는 순간 정당간의 논쟁이 일어날 수 있어 굳이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고 입법화를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에너지전환의 정치가 부재하므로 탈원전 시점도 명확하지 않다.

김 교수는 “지금처럼 신규원전건설을 하지 않고 수명을 연장하지 않으면 2083년쯤이 되어야 우리가 원전에서 탈피하는 시점이 되는데, 과연 문재인대통령이 이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역시 2030년까지 20%정도의 계획만 나와 있는데 이것도 정치적으로 에너지전환에 대한 장기 비전이 없다.

이렇듯 탈원전 시점과 재생에너지 전환에 대한 장기 비전의 부재로 인해 투자자들에게 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한 투자전망 제시를 확실하게 할 수가 없다.

또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고속증식로에 대한 정당의 입장과 정책이 불명확해 여전히 모호하고 논의가 표류 상태에 있다.

에너지 전환 당위성 포괄하는 정책규범수립 필요

과거의 1,2차에너지기본계획을 살펴보면, 1차에너지기본계획에서는 녹색성장을 위해서 청정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명확히 제시하고 에너지정책목표(3E: Energy Security, Efficiency, Environment)로 2030년까지 발전비중 59%까지 원전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차에너지기본계획으로 넘어오면서 CO2증가, 송전망 포화, 주민수용성 문제, 특히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 원전안전에 대한 우려가 증대됐다.

이러한 우려 확대로 진행되는 에너지전환에는 정책 규범이 있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의 당위성 포괄 정책에 대한 규범 수립이 필요한 것이다.

원자력의 잔여위험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 탈원전 정책의 적실성을 구분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탈원전 정책은 잔여위험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전제하고 있다. 이는 원자력발전의 잔여위험에서 가능한 빨리 탈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원자력을 대신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확보되는 대로 원전을 폐쇄해야 한다. 즉, 탈원전의 속도는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에 의존함을 뜻한다.

독일의 경우, 1979년부터 정치적 논쟁을 시작해 최종폐쇄까지 43년이 걸리고 우리는 2017년부터 공론화 시작시점으로 해서 2083년에 최종폐쇄 된다면 66년이 걸린다.

김 교수는 “독일의 입법화는 2002년에 됐다. 우리도 지금부터라도 (신규원전건설 등) 탈원전 정책이 정치적 논쟁이 되더라도 입법화하려는 노력을 하면 앞으로 40년 쯤 후 탈원전을 하리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조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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